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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희망을 준 두 여자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11.21. 23:28:19   추천: 1   글쓴이IP: 125.139.13.93
진안문학: 윤재석

사랑과 희망을 준 두 여자

윤재석

나는 월남에서 국토방위 의무를 수행했다.
대한민국 국군이 월남전에 파병된 까닭이다.
월남 파병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이다.
1966년 8월에 백마부대 1진으로 부산항을 출발했다.
월남에서 15개월 동안 파병생활을 했다.
타국에 있으니 조국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를 알았다.
49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 되었다.
파병 생활이 헛되지 않은 추억이 되었다.

여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부산 부두에서 파월 장병 환송식이 있었다.
국민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국가적인 환송행사가 열렸다.
파월 장병가족은 물론, 부산시민의 뜨거운 환송식 모습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떠나는 자와 보내는 사람의 작별의 장이 되었다.
서로가 불러 보는 소리는 가슴 미어지는 절규였다.
다시 오겠지만,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열렬한 환송식장의 오색 종이테이프는 배와 육지로 연결되었다.
서로가 한쪽 끝을 붙잡고 무운을 빌어주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주고받았다.
테이프 끝에 주소 쪽지를 매달아 주면서 서로의 안부 전했다.
한편으로는 배에서 주소를 적어 아래로 내려주기도 했다.
누가 내 주소를 받았는지 모른다.
함상과 부두는 동포애로 하나가 되었다.

긴 고동을 울리며 배가 천천히 움직였다.
뱃머리를 돌리니 부두의 물 속이 한바탕 뒤집히고 있었다.
부산 오륙도를 옆으로 끼고 우리를 태운 군함은 점점 속력을 냈다.
부산항의 모습이 아스라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전쟁터에 가는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무겁고 착잡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생과 사를 기약 못 하는 길이 아닌가.
오륙도도 멀어지고 보이는 것은 오직 바다뿐이었다.
대한민국의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조국과 동포가 무엇인지 이때 알았다.

1주일의 항해를 마치고 월남 땅에 도착했다.
저녁 무렵 군용 트럭을 타고 캄란항으로 이동했다.
전쟁터란 생각에서 하루하루가 긴장이었다.
오늘은 무사했는데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생활이었다.
한 달쯤 지나니 조금은 적응이 되고 긴장도 풀렸으며, 자신감도 생겼다.
캄란항에서 3개월 생활을 했다.

B순자로부터 처음 편지를 받았다.
나는 그때의 감동이 살아나 지금 잠시 펜을 놓고 있다.
월남에서 처음 받은 편지이고, 감동이 너무 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서다.
부산부두에서 보내준 나의 주소를 받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를 가슴에 대고 난 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 보았다.
전쟁터에서 꼭 살아오시라는 안부와 무운을 빈다는 내용이었다.

B순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감사 말을 잊지 않았다.
월남의 자연과 풍광을 생각이 닿는 데까지 전했다.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야자수와 바나나가 아름답고 특이함도 써보냈다.
편지 한 번 오가는데 15일씩 걸렸다.
내가 보낸 답장이 빨리 가야 2주가 걸리는 것이다.
나의 바람은 정확히 전달되고 다시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뿐이다.
편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H순옥의 편지가 왔다.
순옥의 편지도 내가 보낸 쪽지의 주소를 보고 보낸 편지다.
종이쪽지인데 이렇게 편지를 보내다니, 그때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다
그려낼 수가 없었다.
가슴 설레게 하는 편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월남의 뜨거운 열대 기후도 이제는 별문제 될 것이 없다.
또박또박 쓴 편지에는 아저씨라 했지만 내 가슴에는 연인이 되어 있었다.
편지를 받은 순간은 행복이었다.

B순자 사진이 왔다.
내가 먼저 월남의 마을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보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나의 병영생활 사진도 들어있었다.
편지 봉투를 열고 읽으려니 사진 한 장이 손에 잡혔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사진이 들어있었다.
B순자다.
긴 머리에 얼굴은 약간 둥그스레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시원스러웠다.
사진으로 보는 인상이 퍽 유순해 보였다.
아침해가 뜨고 저녁해가 질 때면 항상 사진부터 보곤 했었다.
내게 사랑과 희망을 준 여자다.

H순옥이의 사진도 받았다.
사진 속 순옥이는 여고생이었다.
흰색 여름 교복에 허리띠를 매고 하얀 옷깃을 한 단아한
학생의 모습이었다.
단발머리에 이마는 조금 나온 듯하고 눈자리는 깊어 보였다.
두 눈은 빛이 나고 양 볼이 토실토실한 영리해 보이는 여고생이었다.
빙긋이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무한히도 감사했다.
삶에 희망을 주는 순옥이다.
편지 끝에 조심하고 건강하라는 부탁은 어쩌면 어머니들이
아들에게 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사랑과 희망을 준 여자다.

소월 시집을 받았다. B순자가 보내준 선물이다.
각 중대 우편물을 분리하는데 나의 편지는 없었다.
달랑 하나 소포가 남았다.
편지가 없는 서운함에 마음이 처져 있었다.

"윤 병장님, 소포네요!"

귀가 번쩍 뜨였다.
아까까지 내 우편물은 없었는데 참 희한했다.
마지막 남은 소포 우편물이 순자가 내게 보내준 소월 시집이었다.
소포를 가슴에 안은 채 어린애가 되었다.
얼른 내 근무처로 왔다.
소포 겉봉투는
“보내는 사람 : 부산시 부산진구…B순자 드림.”
“받는 사람 : 주월 백마 9952부대 1대대 본부중대 SIG(통신)
병장 윤재석 님께” 분명 내게 온 소월 시집 진달래였다.

두 여자에게 이처럼 사랑과 희망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순자와 순옥이가 준 편지는 이역 월남에서 버티는 힘이 되었다.
밤에 보초 설 때면 조국이 있는 북녘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한 달에 두 번씩 주고받는 편지는 밤하늘에 은하수보다 긴 다리가 되었다.
편지 끝의 '만날 때까지 조심하고 건강하라'는 부탁은 사랑과 희망이었다.

사랑과 희망 나누는 방법을 가르쳐준 여자들이었다.
나의 삶은 두 여자가 힘이 되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아마 생이 다할 때까지 사랑과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두 여자의 사진은 지금도 내 사진첩 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
'순자, 순옥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건강하고 행복하기 바란다.'
나에게 사랑과 희망을 준 두 여자를 영원히 내 가슴에 묻어 두고 싶다.

윤재석
대한문학으로 등단
대한문학작가회 회원
진안문인협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삶은 기다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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