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문학
아이디
암호
회원가입   암호분실
ADMIN 2019. 05. 19.
 무논에서 풀을 뽑으며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7.12. 01:14:56   추천: 2   글쓴이IP: 125.139.13.62
진안문학: 신팔복

무논에서 풀을 뽑으며

신팔복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끼었다.
중심을 잃어 넘어질까 봐 조심조심 무논으로 들어섰다.
벼 포기 사이로 발을 디디니 논흙에 발이 깊숙이 빠져들었다.
앞으로 걸어갈 때는 발을 빼내기 힘든 진흙이었다.
이쪽저쪽으로 기웃거리며 풀을 찾았다.
마치 황새가 먹이를 찾아 나서는 모양 같았다.
한 걸음씩 옮겨 갈 때마다 공기 방울이 물 위로 뽀글뽀글 솟아올랐다.
지푸라기가 썩어 생기는 기체였다.
허리를 굽히고 냉큼 풀을 잡아당겼다.
뿌리가 아직 깊이 박히지 않아 쉽게 뽑혀서 다행이었다.
미지근한 무논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하나둘 풀을 뽑아 양손에 쥐었다.
미운 풀들이다.
돌돌 말아 논바닥 진흙 속에 푹 쑤셔 넣고 발로 꽉 밟아 수장을 시켰다.
마음이 개운해졌다. ‘
요것들! 어서 썩어서 거름이나 되어라.
내가 원하는 건 너희 같은 잡풀이 아니라 쌀이라는 걸 알아라.’
홀로 중얼거렸다.
농사는 몸과 뚝심으로 하는 것인데 몇 걸음도 안 가서 허리가 아팠다.
일어서서 허리를 펴고 이웃 논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허수아비처럼 논 가운데 서 있다.
갑자기 외로움이 바람처럼 스쳤다.
흙탕물이 일어나는 자리는 한 뼘인데 나갈 자리는 바다만큼 넓게 보였다.
다시 허리를 굽혀 풀을 뽑았다.

풀을 뽑는데 공식은 없다.
보이는 대로 옮겨 다니며 긁으면 된다.
익숙한 농부는 자신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논을 매지만, 융통성 없는
나는 길들지 않은 송아지 같다.
혼자 일하니 망정이지 지청구를 듣기 알맞다.
밟은 자리에서 벼 포기가 익사직전이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곧 추켜올렸다.
바람에 살랑거렸다.
고맙다고 활짝 웃어 주는 모습 같았다.

어렵고 힘든 게 농사인데, 애초부터 쉽게 생각한 내 탓이었다.
2년 동안은 그럭저럭 농사를 지어서 논두렁은 만들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모내기를 하고 물꼬도 높였다.
며칠 뒤, 모를 살피러 갔더니 논물이 없었다.
논두렁에 난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나가 버렸다.
위 논에서 물을 대고 논두렁의 구멍을 찾아 막았지만, 논바닥에
뿌리를 내린 풀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자라났다.
벼보다 더 빨리 자라려는 생존경쟁이었다.
제초제를 뿌렸어도 물이 닿지 않는 바닥은 풀이 죽지 않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격이 됐다.

논 가운데로 갈수록 풀이 많았다.
주로 물달개비, 여뀌바늘, 한련초 등이었다.
가끔 자귀풀과 미국가막사리도 보였다.
올챙이도, 거머리도 없는 논이라 옛날처럼 개구리밥이나 생이가래도
보이지 않았다.
거름기가 많은 곳에는 푸른 해캄류가 퍼지고 있었다.

심심함을 달래주려는지,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장단을 맞추듯이 몇 움큼을 금세 뽑아 흙 속에 처넣었다.
옛날에도 뻐꾸기 노래는 농부의 시름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논을 매고, 어머니는 밭을 맸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서
허리 굽혀 일하시며 새끼를 찾는 뻐꾸기 소리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노부모 잘 봉양하고 자식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희망을 잃지 않으셨을 것이다.
농사를 잘 지어 풍성한 수확이 되길 바랐을 것이고. 흙과 더불어
살았던 순박한 농부의 행복을 그렸을 성싶기도 하다.

요즘 생활비로 따지면 쌀값은 얼마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농사를 지은 쌀을 자녀들에게 보내주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워할까?
끼니때마다 하얀 쌀밥을 맛있게 먹는 손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글쓴이:  암호:  댓글:  
LIST  VOTE MODIFY DELETE WRITE  





전체글 목록 2019. 05. 19.  전체글: 1987  방문수: 964259
진안문학
알림 박병순 시 모음 22 편 양력*김용호2017.02.06.*
알림 진안예찬 학생 백일장대회 글 모음*김용호2016.12.16.*
알림 진안문학 회원 활동상황
*김용호2016.08.12.*
알림 진안 문협 지부장 김재환 전근표 이취임식*김용호2015.02.08.*
알림 11회 진안문학상 이현옥 /공로상 허소라, 이운룡, 허호석*김용호2014.12.09.*
알림 김재환 수필가 예술문학상 선정
*김용호2014.02.12.*
알림 진안문학상에 수필가 이용미 씨의 '그 사람'수상*김용호2013.12.11.*
알림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연혁*김용호2013.10.15.*
알림 진안문인협회 회원 주소록*김용호2013.06.21.*
1756 아카시아 꽃 이필종김용호2019.05.14.2
1755 섬섬옥수 어머님사랑 전근표김용호2019.05.14.2
1754 갈증 김수열김용호2019.05.14.2
1753 새조개의 환상 이점순김용호2019.05.14.2
1752 밤꽃 이점순김용호2019.05.14.2
1751 친구의 명복을 빌며 신팔복김용호2019.05.13.2
1750 5월 풍경처럼 김용호김용호2019.05.02.3
1749 철쭉꽃은 김용호김용호2019.05.02.2
1748 반영 김용호김용호2019.05.02.2
1747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김용호김용호2019.05.02.2
1746 사랑하는 일이 김용호김용호2019.05.02.2
1745 노을을 보면 김용호김용호2019.05.02.2
1744 영원 그 안에 김용호김용호2019.05.02.2
1743 그루터기 김수열김용호2019.05.02.2
1742 바람이 부는 이유 김수열김용호2019.05.02.2
1741 춘화 김수열김용호2019.05.02.2
1740 오늘은 참 좋은 날 신팔복김용호2019.05.02.2
1739 추억의 검정고무신 임두환김용호2019.05.02.2
1738 민들레꽃 김용호김용호2019.03.13.4
1737 낚시 김수열김용호2019.03.13.3
1736 더하기 빼기 그리고 이점순김용호2019.03.13.3
1735 달팽이 이점순김용호2019.03.13.3
1734 진달래꽃 피던 날 김용호김용호2019.03.05.3
1733 사랑 할 때 김용호김용호2019.03.03.3
1732 3월 김용호김용호2019.03.03.2
1731 슬픈 날 김용호김용호2019.02.24.2
1730 이렇게 좋은 봄날 김용호김용호2019.02.24.2
1729 나의 삶은 김용호김용호2019.02.24.2
1728 아등바등 살아온 삶도 김용호김용호2019.02.03.4
1727 잊을 수만 있다면 김용호김용호2019.02.03.2
1726 파도는 바다를 친다 전근표김용호2019.02.03.1
1725 큰 별을 바라보며 전근표김용호2019.02.03.2
1724 풀 이점순김용호2019.02.03.1
1723 창 이점순김용호2019.02.03.1
1722 나무 이야기 구연배김용호2019.01.27.2
1721 가까이 더 가까이 구연배김용호2019.01.27.2
1720 추신 구연배김용호2019.01.27.2
1719 고향 김상영김용호2019.01.27.2
1718 그리움 김상영김용호2019.01.27.2
1717 밤비 김상영김용호2019.01.27.2
1716 마이산의 겨울 김용호김용호2019.01.27.2
1715 상고대와 눈꽃 김용호김용호2019.01.27.2
1714 빛과 그림자는 김용호김용호2019.01.27.2
1713 삶 김용호김용호2019.01.27.2
1712 봄이 좋은 것은 김용호김용호2019.01.27.2
1711 우리의 마음속에 김용호김용호2019.01.27.2
1710 마이골 할머니 장터 이점순김용호2019.01.27.2
1709 카네이션 이점순김용호2019.01.27.2
1708 풍경 이점순김용호2019.01.27.2
1707 몽돌 이필종김용호2019.01.27.2
1706 사막의 도시 이필종김용호2019.01.27.2
1705 세월을 품다 이필종김용호2019.01.27.2
1704 나를 그리워하다 정재영김용호2019.01.27.1
1703 마지막 날까지 정재영김용호2019.01.27.1
1702 탑 그림자 정재영김용호2019.01.27.1
1701 구봉산에 왔다 이병율김용호2019.01.27.1
1700 별것 아닌 행복 이병율김용호2019.01.27.1
1699 진안 장날 이병율김용호2019.01.27.1
1698 생의 엔진음 이운룡김용호2019.01.27.1
1697 작은 행복 이운룡김용호2019.01.27.1
1696 동행 허호석김용호2019.01.27.1
1695 나비 허호석김용호2019.01.27.1
1694 이봐요 마이산이 하는 말 들리나요 허호석김용호2019.01.27.1
1693 아름다운 동향 성진명김용호2019.01.27.1
1692 매미 또는 전파 성진명김용호2019.01.27.1
1691 1월 임우성김용호2019.01.27.1
1690 2월 임우성김용호2019.01.27.1
1689 3월 임우성김용호2019.01.27.1
1688 고요한 기쁨 김예성김용호2019.01.27.1
1687 진안예찬 김예성김용호2019.01.27.1
1686 꿈일지라도 이호율김용호2019.01.27.1
1685 술 한잔하자 이호율김용호2019.01.27.1
1684 저 무리 따라가고 싶네 이호율김용호2019.01.27.1
1683 용담 이종천김용호2019.01.27.1
1682 새벽 이종천김용호2019.01.27.1
1681 화분 이종천김용호2019.01.27.1
1680 인연 이종천김용호2019.01.27.1
1679 배신 이종천김용호2019.01.27.1
1678 세월은 공평하다 우덕희김용호2019.01.27.1
1677 인생 우덕희김용호2019.01.27.1
1676 적폐 세력 잔당들의 청소는 언제쯤일까 우덕희김용호2019.01.27.1
1675 사라진 추억 칼바위의 유감 우덕희김용호2019.01.27.1
1674 세월 박희종김용호2019.01.27.1
1673 할 일 없으니 박희종김용호2019.01.27.1
1672 뫔 박희종김용호2019.01.27.1
1671 후회 없는 인생 임두환김용호2019.01.27.1
1670 아름다운 마무리 임두환김용호2019.01.27.1
1669 6백 년 역사 용담향교 이용미김용호2019.01.27.1
1668 물 위에 쓴 편지 이용미김용호2019.01.27.1
1667 길라잡이 남궁선순김용호2019.01.27.1
1666 난향비蘭香碑 김재환김용호2019.01.27.2
1665 카마수트라(kamasutra) 김재환김용호2019.01.27.1
1664 가을 명상 송영수김용호2019.01.27.1
1663 디지털시대의 산골생활 노덕임김용호2019.01.27.1
1662 낭랑 18세의 문학기행 노덕임김용호2019.01.27.1
1661 돼지고기 비계와 곤달걀 윤일호김용호2019.01.27.1
1660 진안 고원길 가는 길 이상훈김용호2019.01.27.1
1659 봄을 찾은 진안고원 임두환김용호2019.01.27.1
1658 침묵이 그리운 세상 임두환김용호2019.01.27.2
1657 가슴으로 보내는 편지 1 김자향김용호2019.01.27.1
RELOAD WRITE
1 [2] [3] [4] [5] [6] [7] [8] [9] [10]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