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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문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3.25. 19:02:31   추천: 15   글쓴이IP: 175.202.95.57
진안문학: 윤재석

사립문

윤재석

사립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 이웃에 대한 배려와 예절의 문화다.
사립문이 열려 있으면 주인이 있다는 뜻이고, 닫혀 있으면
주인이 없으니 다음 기회에 다시 찾아 주기를 바라는 방문객에게
보내는 하나의 배려의 예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립문부터 열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내 집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배려다.
사립문은 하루 종일 열려 있다.
나누어 먹을거리나 이웃 간의 인정이 오가는 길이기도 하다.
나무로 된 시골 사립문은 열려 있으나, 강철로 만들어진 도시의
대문은 항상 닫혀있다.
사립문은 대나무로도 만들고 소나무가지 등을 이용하여 만든 사립문도 있다.
양쪽에 사립문 귀틀을 박은 뒤 한쪽에는 사립문을 매달고, 다른
한쪽에는 사립문이 기댈 수 있도록 하여 사립문을 여닫게 했다.
제주도에서는 장대 하나만 집 앞에 가로 놓아두면 사립문 역할을 한다.
우리 집 사립문은 닫으면 아래는 벌어져 있고 윗부분만 귀틀에 닿는다.
이웃집 강아지나 돼지새끼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립문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사립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하였다.
우리 집 사립문은 닫아도 반쯤은 열려 있고 열어도 반쯤은 닫혀있다.
그러니 꼭 닫을 일이 없다. 언제나 열려 있는 사립문이다.
사립문은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장소다.
어머니께서는 스님이 찾아와 목탁을 치며 시주를 권하면 정성껏
곡식을 가져다 주셨다.
각설이가 찾아와 한 끼의 식사를 부탁하면 그때도 거절하지 않고 주셨다.
그때는 식량이 부족하던 때라 나누어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풍족해져서 많이 달라졌다.
시주를 권하던 스님의 모습, 아침마다 식사를 부탁하던 각설이의
모습이 이제는 옛날의 풍속도로 기억에서 아련하다.
이웃 간 인정이 통하는 공간이었다. 보리개떡을 해도, 도토리묵을 쑤어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가는 이웃을
보내는 곳이 사립문이다.
이제는 시골이나 도시의 사립문도 변했다.
시골의 대나무나 소나무 가지로 만든 사립문은 보기 힘들다.
모두가 철제 대문을 달고 있다.
예전처럼 열려 있지도 않다.
그래도 시골은 정이 오가는 대문이다.
도시는 일찍이 철제대문으로 바뀌었고 항상 닫혀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서로 만나서 인사를 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이웃이 이사해도, 경조사가 있어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일상생활로 되어 버렸다.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변했다.
네 면은 모두 콘크리트 벽이다.
아파트 사립문은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무거운 철제문으로
만들어져 닫혀있다.
인정이 오가기는커녕 바람 한 점도 드나들 수 없다.
찾아 왔다고 그냥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벽에 붙어 있는 초인종 단추를 눌러야 한다.
현관 벽에 걸린 화면을 보고 확인한 뒤 열어 준다.
초인종을 누르고 주인의 선택을 받아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파트 사립문이 철제대문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비밀번호가 입력된
현관대문으로 변했다.
초인종을 누르면 확인하는 일도 귀찮아 아예 대문의 손잡이 옆에
비밀번호를 입력해 놓은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찾아와서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 대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 갈 수가 없다.
비밀번호를 몰라도 들어 갈 수 없다.
세상 참 많이도 변했다.
시골 사립문은 대개 함석으로 되어 있다.
초인종이나 비밀번호가 붙어있는 철제 대문이 아니다.
대문의 손잡이만 붙잡고 열면 열린다.
대문의 모양은 변했어도 인정이 오고 간다.
향약에 있는,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는 덕업상권, 예스러운
풍속은 서로 교류한다는 예속상교, 잘못은 서로 규제한다는 과실상규,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는 환난상휼이란 풍속이 지금도 남아 있다.
마을의 경조사가 있으면 모두 나서서 일을 치른다.
지금도 시골은 인정이 훈훈하다.
문이 닫혀있다는 것은 단절의 의미다.
이웃과의 단절, 그러니 소통이 있을 수 없다.
사립문으로 통하면서 배려와 예절을 바탕으로 살던 시대는 이웃 간의
갈등이 거의 없었다.
철제로 된 대문에서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 간에 시끄럽다고 다투었다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기사를 통해 자주 알게 된다.
아파트 위아래 층간의 소음다툼이 잦다.
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있다.
철제대문으로 꽉 닫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웃 간의 갈등 해소 방법은 없을까.
이웃에 누가 사는지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면 소통이 되지 않을까?
도토리묵이나 보리개떡은 아니어도, 요즈음의 깡통맥주나 음료수
하나쯤 나누는 여유를 갖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이가 된다면
이웃 간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옛날 시골의 사립문이 보기는 허술해도 사람 사는 정만은 서로 통하여
끈끈한 인간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비시시 열리는 사립문, 항상 열려 있는 사립문이
배려와 예절로 정을 나누는 길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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