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문학
아이디
암호
회원가입   암호분실
ADMIN 2018. 12. 13.
 못줄 없는 모내기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3.21. 21:39:27   추천: 20   글쓴이IP: 175.202.95.241
진안문학: 신팔복

못줄 없는 모내기

신팔복

이앙기는 지치지 않는 상머슴이다.
모판을 가득 싣고 우릉 우릉 소리를 내며 무논을 성큼성큼 기어간다.
꽁무니에 달린 기계손이 한꺼번에 여섯 포기씩 척척 모를 심는다.
한 배미 논은 금방 심는다. 논두렁에 서서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를 보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 손과 기계 손, 그것은 느림과 빠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다.
엄청난 일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논을 소작할 사람이 없어 겨우내 마음이 짓눌렸다.
처음 짓는 벼농사라서 두려움이 앞섰다.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이른봄부터 밭으로 쓰던 논을 논두렁을 다시 만들고, 물을 채워 수평을 잡았다.
로터리작업을 하던 날, 이웃 논 주인을 만나 부탁한 모를 물었다.
내가 협동조합에 의뢰한 줄 알고 자기 것만 길렀다고 한다.
철석같이 믿었던 일이어서 듣는 순간 당황했다.
내일 모래에 심어야 하고, 한두 판도 아닌데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올해 농사를 짓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고향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구해줘서 모를 사 왔다.
내 일이 아니면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인데 정말 고마웠다.

모내기철은 바쁘기도 하지만 무척 힘이 든다.
같은 시기에 너도나도 벼를 심어야 하므로 일손이 부족하다.
내가 어렸을 때 농촌에선 가족은 물론 어린아이도 거들어야 하는 게
농번기였다.
학교에서도 시기에 맞춰 2, 3일간 농번기방학을 주었고, 행정기관에서도
농촌 일손 돕기로 모내기를 도왔다.

모내기 날이면 새벽부터 논에 나간 아버지는 논을 갈고 써레질을 했고,
할아버지도 논에 나와서 도우셨다.
바지게를 짊어지고 일찍이 논에 모인 일꾼들은 담배쌈지 담배를 꺼내
곰방대에 넣어 피우고서 바지를 걷고 모판으로 들어갔다.
이쪽저쪽에서 한 뼘 이상 자란 모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찌고,
훌렁훌렁 논물에 흔들어 흙을 떨고 모를 모아 한 춤으로 만들어 짚으로 묶었다.
한 바지게 짊어진 모는 논배미 여기저기에 던져 놓고 모를 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못줄을 잡았다.
긴 막대에 감은 못줄에 빨간 리본을 25∼30cm 간격으로 일정하게 달아
눈금을 표시했다.
모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리본 밑에 3, 4개 정도씩 심었다.

앞 둑과 뒤 둑에서 ‘주울!’하고 소리내어 외치면 또 못줄을 뗐다.
사람들은 뒤로 물러나며 모를 심었다.
못줄을 힘주어 잡지 않으면 가운데는 논물에 잠기어 흙탕물에
꽃(리본)이 보이지 않아서 야단을 맞기도 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거머리는 물결을 따라와 어느새 종아리에 붙어서
피를 빨아 제 배를 채웠다.
한 곳에 두세 마리가 붙기도 했다.
거머리를 떼면 붉은 피가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당장은 쑥이나 토끼풀로 지혈시켰지만, 상처가 아물고 나면 얼마 동안은
무척 가려웠다.
지금 같으면 파상풍이 염려되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다.

햇빛을 쬐며 논두렁에 걸터앉아 먹는 점심밥은 정말 맛이 있었다.
지금도 먹어보고 싶은 못 밥이다.
간 고등어에 햇감자를 넣어 지져 놓은 반찬은 잊을 수가 없고,
검정 콩장과 머위탕은 점심의 단골 메뉴였다.
시장한 일꾼들은 고봉밥을 감쪽같이 치웠고, 때를 맞춰 아이들이
모여들면 일꾼보다 어린이가 훨씬 더 많았다.
배고픈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종일 못줄을 잡고 나면 밤에는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 떨어졌다.

못줄을 대고 심은 모는 반듯하고 간격이 일정하여 논매기도 좋았다.
소주밀식(小株密植) 방법은 수확량을 높였는데, 너른 논에는 장줄과
옆줄을 놓고 눈금에 맞추면 거의 가로세로가 잘 맞았다.
줄을 떼지 못할 정도의 다랑논이나 천수답은 쇠스랑으로 논바닥을 파고
허튼 모를 심었다.
사람마다 눈썰미나 손놀림에 차이가 있어 심고 나면 줄은 비틀 배틀 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내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수업을 몇 시간 끝내고 논에 나가 모를 심었고, 주인으로부터 조금의
수고비를 받으면 필기도구를 사서 나눠주었다.
또 자율학교 기금으로도 냈다. 모내기는 달포가 넘었는데 지금은
이앙기로 모를 내니 열흘 정도면 끝이 날 정도였다.
못줄은 떼지 않아도 간격이 반듯하게 잘 맞는다.
쉽고 편리하게 농사짓는 세상이 됐지만, 농촌은 차츰 어려워지고 있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농촌을 이어갈 젊은 농부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고 소득도 낮고 문화적 혜택까지 적어 농촌을 떠나고 있다.

농업은 인간 삶의 뿌리다.
살기 좋은 농촌이 되도록 서둘러 필요한 정책을 개발해야 할 때려니 싶다.
가을 들녘이 희망의 황금물결로 넘쳐나고, 농민의 얼굴에 생기발랄한
웃음꽃이 활짝 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쓴이:  암호:  댓글:  
LIST  VOTE MODIFY DELETE WRITE  





전체글 목록 2018. 12. 13.  전체글: 1806  방문수: 945083
진안문학
알림 0*김용호2018.11.20.*
알림 박병순 시 모음 22 편 양력*김용호2017.02.06.*
알림 진안예찬 학생 백일장대회 글 모음*김용호2016.12.16.*
알림 진안문학 회원 활동상황
*김용호2016.08.12.*
알림 진안 문협 지부장 김재환 전근표 이취임식*김용호2015.02.08.*
알림 11회 진안문학상 이현옥 /공로상 허소라, 이운룡, 허호석*김용호2014.12.09.*
알림 김재환 수필가 예술문학상 선정
*김용호2014.02.12.*
알림 진안문학상에 수필가 이용미 씨의 '그 사람'수상*김용호2013.12.11.*
알림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연혁*김용호2013.10.15.*
1732 눈뜨는 아픔 구연배김용호2018.11.25.2
1731 강가에서 구연배김용호2018.11.25.2
1730 딱지 이점순김용호2018.11.25.2
1729 무제 이점순김용호2018.11.25.2
1728 낙엽의 꿈 전근표김용호2018.11.24.2
1727 馬耳山 노을 전근표김용호2018.11.24.2
1726 길 전근표김용호2018.11.24.2
1725 민들레 일생 전근표김용호2018.11.24.2
1724 바다는 어머니 고향 전근표김용호2018.11.24.2
1723 가을은 김용호김용호2018.11.24.2
1722 고백 김용호김용호2018.11.24.2
1721 풍경 구연배김용호2018.11.24.2
1720 무인도 구연배김용호2018.11.24.2
1719 매듭 김수열김용호2018.11.21.1
1718 고독한 계절에 김수열김용호2018.11.21.2
1717 사랑과 희망을 준 두 여자 윤재석김용호2018.11.21.1
1716 세월이 흐르는 사이 김용호김용호2018.11.20.1
1715 당신과 나 사이에서 김용호김용호2018.11.20.1
1714 어느 여인의 미소 김용호김용호2018.11.20.1
1713 어머니와 봄볕 구연배김용호2018.11.20.1
1712 이별 김상영김용호2018.11.20.1
1711 고향 유진숙김용호2018.11.20.1
1710 꽃 전근표김용호2018.11.20.1
1709 청매의 봄 전병윤김용호2018.11.20.1
1708 아버지의 계절 정재영김용호2018.11.20.1
1707 나의 부모님 조준열김용호2018.11.20.1
1706 무제 임두환김용호2018.11.20.1
1705 여행을 꿈꾸며 이호율김용호2018.11.20.1
1704 복권의 행복 이호율김용호2018.11.20.1
1703 펜혹 이현옥김용호2018.11.20.1
1702 별것 아닌 행복 이병율김용호2018.11.20.1
1701 中氣 이동훈김용호2018.11.20.1
1700 손전화 집에 놓고 나온 날 윤일호김용호2018.11.20.1
1699 이것은 뭘까 성진명김용호2018.11.20.1
1698 진짜 진안 스타일 노덕임김용호2018.11.20.2
1697 향기로운 사람(의인義人) 김재환김용호2018.11.20.1
1696 당신 김예성김용호2018.11.20.1
1695 무제 남궁선순김용호2018.11.20.1
1694 할 일 없으니 박희종김용호2018.11.20.1
1693 가는 세월 신팔복김용호2018.11.20.1
1692 손 김완철김용호2018.11.20.1
1691 꽃 편지 김강호김용호2018.11.20.1
1690 옹달샘 거울 하나 강만영김용호2018.11.20.1
1689 바람 이는 고갯마루 이상훈김용호2018.11.20.1
1688 무제 이용미김용호2018.11.20.1
1687 귀근(歸根) 이운룡김용호2018.11.20.1
1686 감자꽃 이필종김용호2018.11.20.1
1685 민족의 공적(公敵) 우덕희김용호2018.11.20.1
1684 족두리 꽃 서동안김용호2018.11.20.1
1683 속금산 천황문 문대선김용호2018.11.20.1
1682 멀리 있기에 김용호김용호2018.11.12.1
1681 자화상 김용호김용호2018.11.12.1
1680 쉰둥이의 철학 이점순김용호2018.11.12.1
1679 추억 이정우김용호2018.11.12.1
1678 도담삼봉에 핀 꽃 신팔복김용호2018.11.12.1
1677 늦가을의 침묵 김수열김용호2018.11.07.1
1676 11월에는 김용호김용호2018.11.07.1
1675 슬픈 이별 김용호김용호2018.11.07.1
1674 헤어질 때 김용호김용호2018.11.07.1
1673 황혼이 물들 때 한숙자김용호2018.11.07.0
1672 지켜야 할 양심 신팔복김용호2018.11.05.2
1671 그리움 구연배김용호2018.10.23.2
1670 고요를 찾아 구연배김용호2018.10.23.2
1669 가을낙엽의 비밀 김수열김용호2018.10.23.2
1668 구절초 김수열김용호2018.10.23.1
1667 10월은 김용호김용호2018.10.23.1
1666 진안예찬 학생 백일장 대회 사진 몇 장 김용호2018.10.21.1
1665 바다 위를 가르는 해상케이블카 임두환김용호2018.10.16.1
1664 서예전시회에 참여하고서 윤재석김용호2018.10.16.1
1663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임두환김용호2018.10.04.2
1662 농부 김수열김용호2018.09.29.1
1661 선행 김수열김용호2018.09.29.1
1660 겨울나무의 지혜 김수열김용호2018.09.29.1
1659 추석의 맛 송편과 신도주 임두환김용호2018.09.23.1
1658 고추잠자리 이점순김용호2018.09.07.1
1657 곡두 이점순김용호2018.09.07.2
1656 길 이점순김용호2018.09.07.1
1655 꼭두서니 이점순김용호2018.09.07.2
1654 낮닭 이점순김용호2018.09.07.2
1653 빛의 언어 김수열김용호2018.09.07.1
1652 수신 김수열김용호2018.09.07.1
1651 움켜쥔 손 김수열김용호2018.09.07.2
1650 이끼의 내력 김수열김용호2018.09.07.2
1649 요양병원 김수열김용호2018.09.07.1
1648 효자 태풍 솔릭 임두환김용호2018.09.05.2
1647 나를 다듬어 가는 일 김수열김용호2018.09.01.1
1646 내면 김수열김용호2018.09.01.1
1645 팽이 김수열김용호2018.09.01.1
1644 빨치산 윤재석김용호2018.09.01.2
1643 기록 경신에 나선 더위 윤재석김용호2018.09.01.1
1642 충비 (忠婢) 이난향의 정려에서 윤재석김용호2018.08.26.1
1641 미나리 꽃이 피었는데도 신팔복김용호2018.08.26.1
1640 호박아 고맙다 윤재석김용호2018.08.17.1
1639 111년만의 폭염 특보 임두환김용호2018.08.17.2
1638 사다리 윤재석김용호2018.08.05.2
1637 계곡이 좋다 신팔복김용호2018.08.05.1
1636 아침을 여는 사람들 윤재석김용호2018.07.22.2
1635 모악산에 오르니 신필복김용호2018.07.22.2
1634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 (2) 임두환김용호2018.07.22.1
1633 추억의 시냇가 윤재석김용호2018.07.12.2
RELOAD WRITE
1 [2] [3] [4] [5] [6] [7] [8] [9] [10]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