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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의 성묘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2.09. 00:52:59   추천: 26   글쓴이IP: 175.202.95.40
진안문학: 윤재석

봄날의 성묘

윤재석

조상을 숭상하는데 때가 있으랴.
성묘는 주로 설날, 한식, 단오, 추석에 이루어지고 있다.
명절에 묘를 살펴보는 풍속이다.
성묘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정에 따라 다르지만 요즈음은 추석 명절을 기해서 많이 이루어진다.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는 귀성객으로 온 나라가 법석이다.
따뜻한 봄날, 고향 뒷산에 모셔진 아버지의 산소를 찾는 성묘에 나섰다.


추석 때면 어른을 따라 성묘를 다녔다.
추석날이면 으레 성묫길에 나서야 한다.
부모님께서 사주신 양복과 운동화를 보며 기다리던 추석날이 되었다.
아침 차례를 모시고 어른들을 따라 성묫길에 나섰다.
온종일 산길과 들길을 다니며 조상님들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했다.
어른들께서 앞장서니 아니 갈 수도 없었다.
큰집 형님과 나와 동생은 성묘에 빠질 수 없다.

묘소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성묘하기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묘소가 한 곳에 있으면 좋으련만 이곳저곳에 있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3~4km를 옮겨 다녀야 하니 고생이 심했다.
그래도 조상님께서 집안의 번성과 자손들의 부귀 현달을 위해
좋은 곳이라 하여 찾아다니면서 모신 묘소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조상님들의 후손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이 정도의 고통쯤은 참고 견디는 것이 도리다.

아주 먼 곳은 하룻밤을 자면서 성묘를 했다.
진안군 백운면에서 장수군 대성리까지 가야 하니 하루해로는
성묘가 되지 않는다.
이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가 하나로 합장되어있다.
나로는 할아버지요 할머니지만,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부모님 묘소다.
다른 한쪽에는 큰어머니가 계신다.
빠뜨릴 수 없는 성묘다.
아침에 출발하여 신암리를 거쳐 팔공산 필득이재를 넘어가서
성묘를 마치고 나면 하루해가 거의 저문다.


장수에서 묘를 관리하신 분과 아버지와 어떤 관계로 알게 되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알고 계신 모양이다. 무척이나 친하고 정다워 보였다.
두 분의 말씀 가운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가 좋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묘소는 마을 뒷산 나지막한 곳에 있어 찾기도 편하다.
성묘 가서 보면 묘소가 항상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묘소 관리에 필요한 농토를 주신 듯했다.
성묘를 마치고 나면 이틀 해가 다된다.

봄날의 햇볕이 따뜻하다. 산에는 꽃이 피고 있다.
내가 살던 고향 뒷산에 계신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보고 싶었다.
내 나이 19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53년 전에 이곳에 모셔진 것이다.
장례 치르던 날 눈이 어찌 그리 많이 왔는지. 눈이 쌓여
앞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상여 앞에서 눈을 치워 주어야만 갈 수 있는 형편이었다.
처음 정한 장지로 가기가 어려워 이곳에 모셨다.
지금의 장지는 부모님께서 가꾸시던 밭이다. 눈길을 마다치 않고
장례에 참석해 주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 드린다.

치상을 마치고 삼우제를 지냈다.
꿈에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두루마기에 모자를 쓰고 계셨다.
장지에 대한 말씀이셨다.
처음 정한 선산의 장지도 좋지만, 지금 이곳이 좋다는 말씀이셨다.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 올려서 묘를 쓰면 더욱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꿈속의 모습과 말씀이 또렷이 기억되고 잊히지 않는다.

2012년 11월에 현몽 現夢의 말씀대로 위치를 위로 옮겨 이장을 해 드렸다.
얼른 실행치 못한 죄송함이 늘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골은 손가락 마디 하나도 손상 없이 오롯한 모습이었다.
자상하시고 엄하시며 오직 집안일에 부지런하고 성실한 분이셨다.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이장을 하는 동안 내내 일찍 돌아가셨다는 생각과 잘해 드리지 못한
회한뿐이었다.
정성껏 이장을 마쳤다.

묘소가 넓은 편이다.
묘역 잔디에 잡초가 섞여있어서 해마다 제초제를 뿌리고 뽑아 준다.
그래도 잡초가 없어지지 않는다.
묘역 둘레에 회양목을 심고 묘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철쭉나무를 심었다.
봄이 오면 철쭉이 보기 좋게 피어 묘소를 환하게 해드리고 싶어서다.
철쭉이 붉게 피어 있다.
내 마음이 즐겁다.
묘소 앞에 두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었더니 잘도 커서 매실을 달고 있다.

지금은 묘소 관리가 잘되고 있다.
그러나 조상 섬기는 일이 자꾸 퇴보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우리 후손이 지금처럼 묘소를 잘 관리할까.
우리도 아버지께서 조상 섬기는 바에 비하면 절반도 못하고 있다.
과연 나의 후대가 묘소를 잘 관리할까?

추석에도 성묘를 하지만, 때때로 가끔 성묘를 한다.
옛날에는 걸어 다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자동차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
오늘도 봄날의 햇볕이 따뜻하여 묘소를 찾았다.
아버지의 묘소는 한겨울에도 눈이 별로 없다.
눈이 금세 녹아 버린다. 묘소의 봄볕이 더욱 따뜻하다.

이제는 다시 만나 볼 수 없고, 기약도 없다.
자상하고 근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만 떠오를 뿐이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하지 못하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고 했다.
성묘를 하면서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곤 한다.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자꾸 뒤돌아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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