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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샘추위
글쓴이: 김용호  날짜: 2018.01.30. 23:22:37   추천: 29   글쓴이IP: 175.202.95.212
진안문학: 임두환

꽃샘추위

임두환

생동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든 봄기운에 얼음장 밑 물웅덩이에는
개구리가 짝을 찾느라 분주하고,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헤치고 돋아난
새싹들의 끈질김에서 봄이 왔음을 느낀다.
그뿐 아니다.
푸른 하늘을 날며 조잘대는 작은 새들의 속삭임과 따스한 햇볕아래
매화 산수유 개나리의 꽃망울들이 금세라도 터질 듯 부풀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봄이 일찍 찾아왔다고 호들갑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삼월 하순인데도 동장군은 자리바꿈하기가
싫은지 심술을 부리고 있다.
엊저녁부터 회오리바람과 강추위가 몰아치더니, 전주(全州)지방 수은주가
섭씨 영하 12도까지 뚝 떨어졌다.
두툼한 잠바에 목도리까지 둘렀는데도 온몸이 움츠러들고
발걸음이 허둥대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우리나라를 찾아드는 불청객이 있다.
겨울철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시베리아 기압세력이 약화되면서
기온이 상승하다가, 일시적으로 강화되면서 발생하는
이상저온현상이 바로 꽃샘추위가 아니던가.

산수유와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다.
혹한기를 이겨내며 새 생명을 잉태하는 봄이 오면, 나의 굴곡진
지난날이 되새겨진다.
내 삶에서도 꽃샘추위는 비껴가질 않았다.
한마디로 파란만장의 세월이었다. 직장 동료였던 L친구는,

“두환아, 다른 사람 같으면 한 번의 일만 겪어도 죽을 맛인데,
너는 엄청난 일을 세 번이나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고 있으니
정말로 대단하다.”라고 격려를 했다.
내가 수렁에 빠졌다고 해서 허우적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아내와 더불어 아들, 딸이 있고, 어머님과 여섯 명의
동생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임씨 집안의 대들보였던 나로서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뛰어야 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잠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내 삶에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꿈과 희망을 키워나간다면
성공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과
‘인생은 생명(生命)이 있는 한 희망(希望)이 있다.’는 글귀를 좋아했다.
이것을 책상머리에 써 붙여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에 새겼다.
철부지였던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아리송할 뿐이다.

겨울의 끝자락이 사위어가고 대지에 일렁이는 꽃샘추위가 닥치면 여지없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등장한다.
나는 여태껏 이 뜻을 ‘봄이 와도 아직은 봄이 아니다.’ 라고만 알고 있었다.
사실인즉, 춘래불사춘이란 말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하여,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詩)
‘소군원’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한나라 원제(元帝)는 걸핏하면 처내려오는 북방의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후궁을 흉노족 왕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누구를 보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 중 아주 못생긴 왕소군(王昭君)을 찍었다.
흉노의 땅으로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온 왕소군의 실물을 본 황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궁녀들의 초상화는 궁중화가 모연수가 그렸다.
그런데 미모에 자신이 있는 왕소군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못나게 그려졌고, 그래서 황제의 눈에 들지 못했다.
왕소군이야말로 월나라 서시, 삼국지의 초선, 당나라의 양귀비 등과 함께
4대 미인으로 꼽혔지만, 황제의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북방으로 팔려가야 했다.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 흉노의 땅에서 봄을 맞아야 했던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해서 쓴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생겼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라는 뜻이다.
그 당시의 왕소군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짠하고 애처로워진다.

나는 어린 시절을 들개처럼 살았다.
봄에는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여름에는 개울에서 헤엄을, 가을에는
열매를 찾아 산 속을, 겨울에는 얼어붙은 논배미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그 뿐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구나 마을 앞 공터에 모였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비석치기 팽이치기 자치기 술래잡기 등을 하면서
개구쟁이로 자랐다.
내 나이 내일 모레가 칠순인데 아직은 끄떡없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어느 토요일이었다. 전주(全州)에서 살고 있는 딸, 순옥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온가족이 모여 점심을 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족이라면 아내와 나, 딸 순옥이와 사위 송중섭, 외손녀 보연
보람이가 있고, 아들 진영이와 며느리 기은영, 친손자 지훈이까지
모두 아홉 명이다.
순옥이는 밖에서 멋지게 한 턱 내겠다고 우겼지만, 아내는 그 돈 가지면
온가족이 오붓하게 먹을 수 있다며, 집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외손녀 송보연은 초등학교 5학년, 보람이는 3학년이다.

친손자 임지훈은 백일을 넘긴지 40 여일이 된다.
손자손녀를 자랑하면 칠푼이가 되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면
1만원을 내야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 손자손녀도 재롱과 함께 얼마나 예쁜 짓을 하는지 오전에 보았어도
오후가 되면 또 보고 싶다.
기우(杞憂)일지 모르지만 요즘, 자녀를 한둘만 낳아 기르다보니
과잉보호가 문제다.
내 손자손녀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온실 속에서 자란 식물처럼
나약해 보이니,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햇볕도 쬐고, 비바람도 맞고, 꽃샘추위도 겪게 해서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주는 게 어른들의 할 일이려니 싶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법도 배워야겠지만, 내 자신과 싸우는 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꿈과 희망이 가득한 새봄, 내 인생의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내 자신의 거울을 끊임없이 들여다볼 일이다.

어제보다 오늘을 좀 더 멋있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멋진 인생이 될까,
그것을 깊이 연구해야 하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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