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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남궁선순
평소 글 쓰기에 모자람이 많아, 턱! 하고 막힐 때면 떠들썩한 주변을 탓하거나,
바빠서 눈코 뜰 새 없다는 등의 푸념을 해왔었다.
그럴 때마다 어느 한적한 산골에 들어가 묻혀 살면 밖으로 나도는 일도 없을 테고
저절로 글이 써지지 않을까 하는 꿈같은 일을 그려보기도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했던가, 여러 준비 끝에 산골 행이 이루어졌다.
원하던 대로 자연에 묻혀 살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산골 살이 준비 등으로 한 동안 분주하게 지내는 사이, 쏟아 낼 것이 많아
터지기 직전의 풍선마냥 부풀었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문구가 술술 쏟아질 줄 알았다.
공기도 좋고 물 맑고 주변경관 한 폭의 그림이고 장년이 된 아들들
신경 쓸 일 줄었고, 하늘이던 남편이 땅으로 내려와 이모저모 보살피며 도와주고,
밤낮 없이 책이나 붙잡고 살아도 되는 무엇 하나 흠을 잡을래야
잡을게 없는 완벽한 상태다.
지금쯤에는 글 꺼리가 넘쳐서 익은 감 떨어지듯 알밤 벌어져 튕겨 나오듯,
시간이 흐를수록 농익어 내 앞에 쌓여야 마땅하다.
지난 시절 도심 속 고층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회색빛 하늘만 바라보다가,
앉으나 서나 화장실이건 주방이건 고개만 돌리면 초록빛 숲이 눈앞에
펼쳐지니 더는 바랄게 없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풍광명미를 빈 원고지에 옮기면 그만인데……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시들해진다는 말이 필경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깊은 산 속에 들어앉았으니 녹음방죽에 빠진 한그루 나무처럼 꼼짝 못하고 있으며,
폭염을 뚫는 대찬 솔바람이 머릿속을 쓸어낸 듯 비어 버려서 무상심한 상태이다.
몽롱하게 취했거나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좋은 것들만 갖추고 있으니 귀한 줄 몰라서 인가,
아니면 혈액형이 B형이래서 변덕이 발동하여 어제의 마음이 오늘 벌써
달라졌음인가, 그도 아니면 내 성미가 급해서 안달을 내는 것인가,
잡스런 생각에 붙들려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느 소설가는 하고 싶은 말마저 꾹꾹 눌러 참고 가슴에 묻어 두어야 그
것들이 쓸거리로 남는 다는데, 나야말로 내가 원하지 않으면 누구하나
방해할 사람 없다.
게다가 분위기 있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작은 들창이 있는
조용한 황토방, 외딴집이어서 마당에 나와 앉아도 거리낄 것이 없기에,
기분에 맞추어 작업 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만족의 연속이다.
속이 터지는 대로하자면 소리라도 지르며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다.
끄적이다만 원고 뭉치를 불 싸지르며 이러다 흰머리 감당을 어쩌나 싶고,
언제쯤 이 병이 나라지려는지 안개 속이다.
거창한 소설이래도 쓰려는 욕심이 있는 게지 생각할 수 도 있겠으나
결단코 그렇지도 않다.
다 접어두고 숲 속을 헤매거나 끝이 없는 집안 일에 메달리기도 해보지만,
그것도 잠깐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생각의 덩어리가
시도 때도 없이 솟는 것까진 좋았는데……
혼자서 텅 빈 국도를 달릴 때라든가, 손 더럽히고 앉아 수북하게 쌓인
김칫거리 다듬을 때, 피곤한 몸 뉘어 쉬려는 오 밤중에 불쑥 갖가지
상념에 휩싸이니 나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가?
도대체 어떤 귀신의 조화인지, 이럴 때 만사 제치고 책상머리에 앉아야 하는데,
생각만큼 손가락까지 민첩해지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욕지거리가 나온다.
그러다 기막힌 생각하나
‘소형 녹음기 하나 달고 살아봐?’무릎을 칠 일이다.
‘생각 날 때마다 주절주절 녹음했다가 시간 나면 정리하고 괜찮은데’
‘말도 안 돼! 그 정도면 쓰는 일 애 저녁에 관둬야 되는 거 아냐 애시당초
글쟁이 말고 말쟁이를 하지 그랬어 왜~’
주거니 받거니 쓸데없는 상념에 쌓여 보지만 또다시 뒤엉키고 만다.
‘더러는 글 쓰기를 고통이니 아픔이니 하던데 이런 것이 그것인가?’
여전히 엉킨 실 꾸러미를 한아름 끌어안고 있지만 한껏 토로하고 나니,
동굴 속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치고 난 이발사의
가슴처럼 후련한 구석이 없지 않다.
사노라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서두르지 않고 쉬었다가 가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말을 새기며 나의 독백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청신호는 아닐까
온 산을 촉촉이 적시던 비가 그치고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물안개 피워 올리며
해 맑은 모습 드러내는 숲을 바라보노라니, 머지않아 암흑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러면서 합병증처럼 찰싹 달라붙는 한 가닥 행복감은 무언가.
이 통증을 사랑하며 즐기고 있음인가?
글쟁이들의 공통된 고민일 뿐 별거 아냐, 결국엔 이것 또한 소재일 테니……
위안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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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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