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라이학교
신팔복
오늘은 오이타 현[大分 縣]의 여러 곳을 관광하는 날이다.
일행이 호텔에서 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마을에 도착했다.
무사마을은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크고 작은 나무들로
조경이 잘 되어 있고, 남쪽과 북쪽 두 언덕 위에 있었다. 생
각보다 너른 곳으로 여러 채의 집들이 보였다.
언덕을 돌로 쌓아 옹벽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생활한다.
적의 침입을 피하려는 목적인 것 같았다.
공동우물과 너른 훈련장도 있고, 크고 작은 건물도 있다.
중앙의 통로로 오르는 비탈길은 인도불럭 처럼 얇은 돌 판을 깔아
길의 파손을 막았는데 관광객들이 많이 다녀서 그런지 번들번들했다.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사각형 초소를 지나야
마을에 접근할 수 있다.
매 눈을 하고, 일본도(日本刀)를 옆구리에 차고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을
초병을 상상하며 이곳 관리자의 권력이 대단했음을 짐작했다.
마을 어귀라 할 수 있는 남쪽의 언덕 위엔 하급 관리가 살았고,
북쪽 바닷가에 있는 언덕은 고급관리와 봉건시대에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들을 다스리던 번주(藩主)가
거주하던 곳이었다.
지금도 보존하고 있는 무사의 저택으로 들어섰다.
갈대지붕에 높은 처마로서 규모도 대단히 큰집이었다.
사방으로 여닫을 수 있는 미닫이문에 칸칸이 다다미방이었다.
가운데 방에는 이곳 번주가 여러 관리를 앉혀놓고 영내의
민생과 치안을 의논했을 것 같은 자리다.
정원은 넓고 수목은 잘 다듬어 져 보기 좋았다.
언덕 위 높은 위치라서 주위를 감시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하급관리들이 살았다는 남쪽 언덕에서 수백 년이 되었을
흙벽을 만져보며 주민이 사는 집들을 지나는데, 좁은 소나무 숲 사이에
사무라이학교가 있어 일본의 역사를 모르는 나는 깜짝 놀랐다.
무사를 양성하는 학교가 있었다니 정말 의외였다.
지금은 폐교로 남았지만, 1874년에 설립한 학교였다.
교문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작은 교무실과 좁은 운동장이 있었다.
창 너머로 교실과 교무실을 들여다보니 종과 칠판, 어린이 책상 등이
그대로였다.
좁은 공터에 학생 사무라이 동상이 있어 다가갔다.
앞머리를 밀어버리고, 정수리에 꽁지처럼 머리를 묶어 매고
단화에 각반을 둘렀다.
두 손엔 책을 들고 보며 어린이답게 작은 지게에
나무 짐을 메고 걷는 모습이다.
우리의 주경야독과 같은 면학을 일깨워주는 교훈으로 보였지만,
일본의 교육은 아무래도 우리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교육은 한 어린이를 계획적으로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인물로
길러내는 면이 있는데, 무기가 되는 칼을 도구로 삼는다면
결국은 피를 부르지 않겠는가 싶어 가슴이 오싹했다.
우리네의 붓을 든 교육과 견주어 보며 감회가 아주 달랐다.
기록에 의하면 본래 사무라이라는 용어는 귀족 출신인
무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12세기에 권력을 장악하여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때까지
일본 정치를 지배한 무사 계급에 소속된 모든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
사무라이들은 상당한 무예 수준이었고 자존심을 가진 지방
무사 세력으로도 발전하게 되었다.
불교의 영향도 받아 다도나 꽃꽂이 같은 일본 고유의 예술들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이상적인 사무라이는 불문의
행동 규범을 따르는 극기적인 무사여야 했으며, 이 행동 규범은 뒤에
무사도(武士道)로 정립되어 용기, 명예, 개인적 충성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불명예나 패배를 당했을 경우에는 할복자살을 택하는 것이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도쿠가와 시대에 사회질서를 정착시키고 안정시키는데 노력했던
사무라이들은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 폐쇄적인 계층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상징하는 두 자루의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허용되긴 했지만, 250여 년 동안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평화시대에 대부분 관리가 되거나 다른 생업에 종사하게 됐다.
1871년 봉건제도가 공식적으로 철폐되었을 때 사무라이 계급의
특권적인 지위도 없어졌다고 한다.
키즈키 성(城) 아랫마을에서 기모노를 입고 게다[下馱]를 신고
양산을 받쳐 들고 걷는 일본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복차림으로 전주 한옥마을을 걷는 사람들처럼 일본 전통복장을
지켜가는 주민들이다.
시내에 있는 고쿠라 성도 관람했는데 그들이 전시한 투구와
철갑 옷들을 보니 저런 옷을 입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겠다고 생각하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개항의 역사가 깊은 모지코[門司港]는 건물들이 고풍스러웠다.
전망이 좋은 모지코 레트로 31층에 올라 간몬 해협을 건너는
현수교와 야마구치 현의 시모노세키를 보는 풍광은 아주 좋았다.
혼슈[本州]로 통하는 간몬 대교에는 달리는 차들이 많았다.
커피를 마시며 바다 끝으로 넘어가는 석양의 붉은 해를 바라보는데
벽에 붙은 액자 한 점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두 무사가 칼을 겨누고 있었다.
저 멀리 간류지마[巖流島]의 모래밭에서 에도시대 당대의 무장인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목숨을 건 한 판 결투였다.
젊은 시절에 마음을 졸여가며 읽었는데 바로 이곳이 그 역사의
현장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배우면 써먹게 마련이다.
칼춤은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고 만다.
|
|
암호 
사무라이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