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을 담은 온천욕
신팔복
고등학교 동기생 7명이 일본 벳푸(別府)로 여행을 갔었다.
일본 남쪽 섬, 규슈(九州) 오이타 현의 온천이 많은 곳이다.
인천공항을 저녁에 출발한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창문으로
내려다본 한반도는 점점 어두워졌고, 하루 일을 마친 해는
짙붉은 햇살을 멀리 펼치더니, 마치 고요한 수평선을 넘어 가뭇없이
대류권 밖으로 사라져갔다.
가끔씩 나타나는 도시의 불빛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우리 땅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었다.
약 2시간이 지나 후쿠오카(福岡)공항에 도착했고, 입국 절차를 마치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온화하고 바람도 조용했다.
강물도 조용히 흐르고 따뜻한 남쪽이라서 푸른 버드나무 잎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오늘은 온천체험을 하는 날이라 무척 기대되었다.
36명의 여행객을 실은 버스는 후쿠오카에서 출발하여
유후인 온천마을로 갔다.
도로 가에나 저지대는 대나무가 빽빽했고, 산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했다. 말로만 듣던 삼림이 무성한 나라였다.
우리나라도 자연녹화 방식으로 내버려두지 말고 이제는 계획적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어 풍부한 삼림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도착한 유후인 작은 마을은 우뚝한 유휴산(1,040m)이
낙타의 쌍봉 같았고, 정상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
겨울과 봄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촌이었다.
식당 2층에서 내다본 소재지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산자락 아래에서
네 개의 하얀 수증기 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온천 수증기였다. 마치 제사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굴뚝 연기처럼 보였다.
계곡 아래에 있는 긴린호수를 찾아갔을 때 온천수가 흘러 내려와
냉수가 섞여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났고, 크고 작은 고기가 많이
놀고 있었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물결이 인다고 해서 긴린호수라 부른다니,
그럴듯한 이름이었다.
주위에는 우람한 삼나무가 둘러싸여 호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친구와 함께 인력거를 타고 골목길을 둘러 봤는데 허름하게 보이는
오래된 집들이 모두 온천탕이라 했다.
개인이나 가족이 휴양하며 즐기는 곳으로 꽤 비싸다고 인력거를 끄는
아가씨가 서툰 우리말로 알려주었다.
중심가에는 기념품가게가 빼곡했고 갑자기 몰려온 우리나라
관광객으로 붐볐다.
골목을 끼고 있는 주택들은 올망졸망한 나무들로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고, 울타리는 상록수를 심어 깔끔하게 전지해 놓아 보기 좋았다.
산중의 농촌마을이라 얼마 되지 않는 논은 벼를 베어내어 말라 있었다.
마을로 흐르는 실개천에 맑은 물이 잔잔히 흐르고 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청정한 물 속에 피라미와 같은 작은 고기들이
수초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험준한 고개를 넘어 바닷가에 위치한 벳푸로 이동했다.
벳푸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유명한 온천지역이다.
모두 8개 지역 온천에서 2,848개의 원천이 솟아 그 수효가
세계 제일이며, 용출량도 하루에 13만 6,571킬로리터로 온천이 많은
일본에서도 제일가는 지역이라니 놀라웠다.
산자락과 도심 속에서 온천 수증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거대한 공장 지역을 연상케 했다.
우리는 벳푸지역의 가마도 지옥온천을 체험하기 위해 입장했다.
사람들로 붐볐는데 자욱한 수증기가 퍼지며 달걀 썩는 것 같은
유황 냄새가 풍겼다.
제주도 화산탄처럼 구멍이 뚫린 검은색 돌담을 쌓은 안쪽에
수증기가 진흙 물을 뚫고 품어져 나오고 또 다른 곳에서는
펄펄 끓는 수증기가 가마솥에서 나오는 것처럼 피어올랐다.
따뜻한 온천수를 맛보니 탄산이 없는 맹물이었다.
여러 사람이 몰려있는 곳을 들여다보니 관광해설사가 연신
담배 연기를 수증기에 불어넣어 흰 구름을 만들어 보였다.
우리말로 ‘정말 신기하네.’ 하면서 박수를 유도해 나도 빙 둘러선
관광객들 틈에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족욕 체험을 할 때는 유황온천이라 그런지 더욱 미끄럽게 느껴졌고
발도 개운했다.
뜨겁게 솟는 수증기로 달걀과 옥수수를 삶아 팔고 있어 간식거리로 좋았다.
백두산 온천수로 삶은 달걀과 같았으나 유황 냄새에 취해
특별한 맛은 느끼지 못했고 긴가민가했다.
호텔 온천탕에서 저녁에 즐기는 온천욕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좋았다.
몸에 좋은 유황과 여러 기운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고, 빙 둘러앉은
친구들의 모습에서 졸업한 지 반세기의 세월을 확인했다.
깊은 주름, 하얀 머리칼, 순한 말소리…….
야외 온천탕에서 목만 내놓고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며,
홋카이도[北海道]의 눈 속에 사는 일본원숭이들이 새끼를 가슴에 품은 채
머리만 내놓고 온천욕을 즐기는 장면이 떠올랐다.
동물 본능의 평안함을 우리가 이곳에서 즐기고 있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건강도 아직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으니
일생 중 지금이 딱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행복한 순간이다.
늘그막의 욕심을 버리고 서로가 즐겁고 보람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일의 또 다른 여정을 기대하며 우정 어린 온천욕을 마쳤다.
|
|
암호 
우정을 담은 온천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