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절의 현장 돈적소를 찾아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나뿐인 목숨마저 바쳐가며 한 임금을 섬기는 게 충신의 길이다.
오늘은 고려 말 충신, 만육晩六 최양崔瀁이 충절을 지키려고
숨어들어 산 곳을 찾아 나섰다.
만육 최양은 고려조에서 대제학을 지낸 충신이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생질이다.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포은을 살해하고 조선을 건국하자, 만육은 벼슬을
내놓고 낙향했다.
이성계가 여러 번 관직에 나올 것을 요청했으나 끝내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조선 건국을 거부하는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최양이 낙향하여 은둔생활을 했다는 돈적소遁蹟所의 위치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암리에 전주최씨 후손인 최만근崔萬根 씨가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의 자형이기도 하다.
돈적소에 대해 물어보니 자신의 선조이시며 그 길을 잘 알뿐더러
자신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자형이 집에 안 계셨다.
전화로 다시 연락하니 밭일을 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다.
일행은 돈적소로 갔다.
자동차로 1km쯤 가니 찻길이 없었다.
걸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처음엔 임도林道로 한참 걸으니 ‘만육 선생 돈적소’란
이정표가 나타났다.
산길이라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서 잡초에 묻혀 있었다.
자형이 앞에서 잡초를 제거하는데도 길이 쉬이 분간되지 않았다.
깊은 산이라 오전 10시인데도 아직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산비탈에 오르니 갈림길이 나타났으나, 자형께서 길을 안내하기에
불편 없이 돈적소로 갈 수 있었다.
길가 잡초를 제거하면서 가는 길이라 등산 속도가 느렸다.
조금 오르니 산길의 경사가 30°는 족히 되는 듯했다.
충절이 무엇이기에 이런 깊숙한 산 속까지 찾아와 숨어살았는가 싶었다.
6월인데 날씨는 완전히 여름이었다.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온몸이 흠뻑 젖었다.
어찌나 더운지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몸에서 한 꺼풀이라도 벗어야 이 더위를 조금 버틸 것 같았다.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발은 몹시도 무거웠지만 참고 버티며 걸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별도리가 없었다.
경사 길을 오른 뒤 조금 평평한 곳에서 일행은 휴식을 취했다.
걸을 때는 바람도 없더니 쉬고 있으니 바람이 불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초등학교 때 선생님 풍금에 맞춰 부르던 추억이 떠올랐다.
물과 과일로 달콤한 휴식 시간을 가졌다.
10여 분쯤 산길을 더 오르니 드디어 바위에 굴이 파인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돈적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막판 힘을 다해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최양 선생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바위에는 최씨 문중에서‘만육 선생 돈적소’라 새겨 놓았다.
동굴 안에는 바위에서 물이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은둔생활은 고행의 길이었으리라.
동굴의 길이는 3m정도로 2층이었다.
동굴 앞에는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서 하늘을 보니 층층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구름이 보였다.
만육 선생은 저 구름을 보면서 마음을 삭이는데 얼마나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냈을까?
최양 선생의 유허비를 찾아가려고 내려왔다. 자동차로 4Km쯤
내려와 반송리 구남각에 도착했다.
구남각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었다.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주위에는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을
말해 주고 있으며,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주위에는 학남정과 개안정이 있었다.
이 마을 이름이 반송리인 것은 쟁반 같은 소나무가 400여 년간 있어서
반송리라 했고, 최양 선생의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졌다 한다.
그 소나무가 지금은 없다.
구남각은 최양 선생의 충절을 기린 비를 보호하는 비각이다.
비의 전면은‘만육 최양 선생 돈적 유허비’라 썼다.
자료에 따르면 비문은 순창 출신 노사 기정진이 지었고,
최양 선생이 은둔생활을 하는 동안 선생의 충절을 본받고자
주민들이 세웠다.
1992년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었다.
1884년(순조34)에 충익공의 시호를 받았다.
충절은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더 존경받게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요즈음 세태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청문회제도가 2000년 6월에 도입되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의 자질과 국정 수행능력을
국회에서 검증받는 제도다.
그 대상은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소장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무위원(장관),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은 국회의 인준 절차가 없다.
하나같이 국가의 요직이다.
대통령의 임명을 받은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논문표절, 위장전입, 탈세 행위, 부당한 병역면제, 부동산투기 등
모두가 범법자들이나 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이들 후보자들을 보면 위 다섯 가지 항목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청문회 때 의원이 질문하면 후보자들은‘기억이 없다.’
‘생각이 안 난다.’‘부인이 한 일이다.’ ‘미처 몰랐다.’등
해괴한 답변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경영하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성찰하고 물러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닐까?
이토록 거짓말을 하면서 꼭 그 자리에 오르고 싶을까?
내가 오늘 찾아본 최양의 충절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갈 길이 어디이며
국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충절의 현장을 찾아 본 오늘 하루 깨달은 점이 많았다.
윤재석
진안군 백운면 출생
대한문학 수필 등단
대한문학작가회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회원
|
|
암호 
충절의 현장 돈적소를 찾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