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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살이
박미숙
이른 아침 옅은 안개낀 마이산길을 산책해본다.
마이산에는 많은 길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연인의 길을 좋아한다.
봄에는 나이 먹은 벚나무에 화려한 눈꽃이 나리는 곳,
여름에는 길 가장자리 달맞이꽃이 수줍게 고개들 들어
사람을 기다리는 곳, 가을에는 단풍이 여러 가지 색색들로 가
을을 느끼게 해주는 마이산 연인에 길은 내 오랜 친구 같은 길이다.
이른 아침은 아침대로 해질 녘 이면 해질 녘 대로 가슴 넉넉하고
고즈넉한 그 길은 친구 혹은 연인, 가족들과 걷기에 마음 가득
느긋함을 선사하곤 한다.
어느 날 남편과 손을 잡고 연인에 길을 걸으면서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들, 아이들 이야기 집안 어른들 이야기,
집안 대소사 이야기, 친구들을 이야기를 하노라면 내가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연인에 길과 친구가 된 것 같은
넉넉함이 오곤 했었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어 좀 쉬고 싶을 때면
잠시 쉬면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실 마이산 연인에 길을 그리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몇몇 그 매력에 푹 빠져 일상에 노곤함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쉼터라고 할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더 매력적인 그곳은 나에게는
많은 위안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연인에 길을 지나면 마이산 탑사를 가는 계단이 나온다.
그리 가파르지 않아 걷기 딱 좋은 그리고 멀지않아 오전 한나절쯤은
너끈히 할애하고도 전혀 후회 없는 계단 길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계단 꼭대기에는 암마이봉으로 가는 또 다른 계단과
화엄굴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작년 이맘때쯤인가 암마이봉 등산로가 개방되고 난 뒤 암마이봉을
간적이 있었는데 잘 정비된 길이 하루쯤 보내고 싶은 길이기도 하였고
정상에서 내려다본 진안은 옹기종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삶을
영위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기자기하니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암마이봉에서 쉬다가 내려오고 화엄굴을 향하니 그곳에
전설이 생각난다.
자식을 두지 못해 애를 태우던 아낙들이 찾아와 백일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을 가진 그곳은 마치 긴 토굴 같은 곳에
깊은 물이 고여있고 사람들에 간절함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 촛불이 흔적들과 정성들이 남아 있곤 했다.
화엄굴에서 잠시 사람들에 기원들, 간절함들을 느끼고 나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은수사가 나온다.
은수사라고 하는절에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하나 아담한 절과
청매실 나무가 인상적인 그곳을 지나면 이갑용 처사님에서
쌓으셨다는 탑사는 지금쯤이면 능소화가 한창이다.
꽃으로는 드물게 주황색을 가진 능소화는 꽃말이 기다림이라고 한다.
능소화에 담긴 이야기는 구중 궁궐 깊은 곳에 나인이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임금에 승은을 입어 신분상승이 되었으나 하루 밤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임금님은 더 이상 궁인을 찾지 않아
담장 넘어 고개를 내밀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한 송이 꽃처럼
저물어버린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능소화는 마이산 한쪽 면을 차지하고 주황색을 처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능소화를 보면서 인간에 삶이란 어쩌면 기다림, 기다림에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려서는 일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학생이 되어서는 자신에
삶을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결혼해서는 남편, 아내를 기다리고,
자식을 기다리고,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나면 그 자식을 기다리고
손주가 태어나면 손주를 기다리고 마지막엔 나에 죽음을 기다리는 ....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 속에 나를 내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탑사를 돌아 다시 왔던 길을 더듬어 가면 된다.
은수사를 지나고 화엄굴을 지나 연인에 길을 오면 다시
연인에 길은 조용히 나를 기다려주고 있어 외롭다거나
쓸쓸함을 느낄 수 없다.
조용조용 걷는 연인에 길은 그렇게 나에 삶 속에서 여유를 내 가족과에
시간들을 그리고 내 자신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열어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버거운 삶들을 살아낼
용기와 여유를 주는 마이산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연인에 길,
오늘도 걸어본다.
내 삶에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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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마이산 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