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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임두환
싱그러움이 더해지는 5월이다.
자연의 섭리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지 초여름의 향기가
바람에 물씬 풍긴다.
5월 초순인데도 한낮기온이 섭씨 29도를 오르내린다.
기상청에서는 관측사상 처음 일이라며 6월 중순 날씨에 해당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온난화현상인 듯하다.
예년 같으면 꽃들이 남녘에서부터 북쪽으로 철따라 피어오르고,
꽃의 종류에 따라 시차가 있다.
산수유와 매화가 새봄을 알리더니 벚꽃과 진달래가 만발하고,
철쭉꽃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전에 이팝나무? 아카시?
장미꽃이 앞을 다투어 산야를 뒤덮고 있다.
이팝나무는 4월말에서 5월 초순에 피는 대표적인 흰 꽃나무로 알려져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주동물원 앞을 지나는데 파란 잎사귀에
눈꽃송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눈이 부셨다.
저 나무가 광합성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백색 이팝나무 꽃은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벚나무와 개나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 저건 벚나무’
‘아! 저건 개나리’ 금방 알아볼 수 있지만 이팝나무를
알아보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성싶다.
여기에 조팝나무까지 끼어 들면 더 헷갈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는 분명 다르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는 둘 다 흰 꽃을 피우지만 전혀 다른 꽃나무다.
조팝나무는 장미과의 낙엽관목이고,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
낙엽교목이다.
꽃의 생김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꽃 모양을 하고 있다.
내 고향 진안 마령 초등학교에는 이팝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214호)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수령이 200년이 넘어 보이는 7그루가 남아있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13그루가 있었다.
그동안 나무의 연륜이 찼는지, 아니면 주변 조경공사 탓인지는
몰라도 수세가 점점 기울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주변에 심어진 자생목이 엄마아빠를 닮아가고 있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오래 전, 춘궁기였던 이맘때가 되면 보릿고개가 떠오른다.
묵은 쌀은 다 떨어지고 햇보리가 겨우 익어갈 초여름이면
새하얗게 피어오른 꽃잎이 마치 쌀밥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밥나무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이팝나무라 불러졌는데, 이팝나무는 한해 농사의
길흉을 점치는 신목(神木)으로도 여겨졌다.
옛 조상들은 꽃잎이 새하얀 입쌀처럼 흐드러지게 만개하면 풍년이 들고,
좁쌀처럼 좀스럽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팝나무건 조팝나무건 항상 빈궁했던 보릿고개
무렵에 하얀 쌀밥처럼 피었기에 민초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팝나무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다.
내 고향 진안을 생거진안(生居鎭安)이라 했는데 진안만큼 살기 좋은
고장이 없다는 뜻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산수가 화려하고 인심이 좋다.
역설적인지 모르지만 진안고을은 고원지대(高原地帶)로
논보다는 밭이 많아서 쌀밥을 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림의 떡이었다.
고등학교 때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김제에서 새로 부임한
K선생님께서는 진안쌀밥은 어쩐지 모래를 씹는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쌀밥이면 다 같은 쌀밥이지 쌀밥이 따로 있나 싶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평야지대의 쌀과 산간지의 쌀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1970년도 초반이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기치(旗幟)아래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개되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한 몸이었다.
나와 네가 따로 없었다.
허리끈을 졸라매면서까지 다음세대들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말자며,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며 구슬땀을 흘렸다.
한마디로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현대화를 위한
풀뿌리지역사회개발운동이었다.
그 당시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풍요(豊饒)를 누리고 있다.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K영감님에게 내 첫수필집
『뚝심대장 임장군』을 드렸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가끔 자리를 함께 한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하고서 한문강사로 소일하고 있다.
하루는 차임벨이 울려 받아보니 K영감님이었다.
종이쪽지에 쌀에 대한 글귀를 한문으로 적어 와서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 쓰는데 참고하라며 건네주는 게 아닌가. 참으로 고마웠다.
옛날 고서(古書)에 나오는 것으로 벼[나락］를 표지초(表紙草)라
불렀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전을 찾아보아도 무슨 뜻인지 나오질 않았다.
첫째는 삼식지상약(三食之常藥),
둘째는 무독지첨약(無毒之甛藥),
셋째는 한인지애약(韓人之愛藥),
넷째는 평생지보약(平生之補藥)이라고 해서
쌀을 주식(主食)으로 삼았다고 한다.
요즘도 배고팠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배고픔을 견디고자 밥 한 그릇으로 김치죽이나 나물죽을 끓여,
온 가족이 나눠 먹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배고팠던 시절, 얼마나 쌀밥이 먹고 싶었으면 이팝나무를
쌀밥나무에 비유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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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이팝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