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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랑
신팔복
아내와 둘이서 아침밥을 먹는다. 쑥국은 향긋하고 구수하다.
내 입맛에 꼭 맞는다. 42년을 함께 살았으니 내 식성을 빤히
꿰뚫어 보는 아내다. 옆 좌석에 아들과 손자가 있었더라면
단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나와 만나 아들과 딸, 아들 2남1녀를 차례로 낳았다.
모두 젖을 먹여 키웠고, 분유는 한 통도 사지 않았다.
이유식도 집에서 만들어 먹였다.
광목 한 통으로 기저귀를 만들어 썼다.
여느 부모들이 애지중지하며 자식을 키우듯이 아내도 끔찍이
자식들을 사랑했다. 씻겨주고 갈아 입히고, 타이르고, 가르치며
남부럽지 않도록 키우려 했다.
나는 형제가 없어 식구가 많은 것을 부러워했다.
큰집 앞 작은 공터에 초가집을 짓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을 땐 무척 기뻤다.
할아버지는 팽이를 깎아주셨고, 할머니는 절이나 대사 집에 다녀올 때면
내가 잘 먹는 떡을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밭일, 논일도 함께 거들어 주셨다. 한 번은 할아버지가 밭으로
일하러 가실 때 내가 따라나섰다.
바지게를 바쳐놓고 밭둑에 앉은 할아버지가 쌈지를 꺼내 부시로
차돌을 여러 번 쳐서 불을 살려 담배를 피우셨다.
부싯돌 밑에 잘 말려 비벼 만든 하얀 수리취 솜에 불똥이 옮겨 붙으면
가는 연기가 솟았다.
그 연기를 입으로 살살 불면 불꽃이 올랐는데 정말 신기한 기억으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밭두렁도 그렇게 불을 얻어 태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는 한 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작은 상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차지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 날 할 일을 얘기하셨다.
거름 내고 논밭 가는 일, 모내고 김매는 일, 수확하는 일,
타작하는 일 등이다.
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조금씩 거들었지만, 부모님은
매일매일 쉴 새도 없이 농사로 살았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2년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무척 슬펐다.
두 분이 80세가 넘었으니 그 시절엔 장수하신 것이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 꽃상여를 만들었고 소나무 관은 목수가 짰다.
자가용은 한 번도 타보지 못하셨지만 그 대신 상여를 타고
선산으로 떠나셨다.
지금은 종형제와 함께 벌초를 하며 관리하고 있다.
손자와 손녀를 무척 귀여워하시던 아버지는 애들이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 애들이 결혼해 낳은 증손자와 증손녀의 재롱을 보시고
환하게 웃으며 예뻐해 주셨다.
그 뒤 노인요양원에 계시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마이산 아래
아버지 산소 옆에 모셨다.
어느 날 여동생이 생겨서 좋았다.
보육원에서 나와 마이산을 구경 왔다가 갈 곳이 없어 저녁
늦게까지 서성이는 아이였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왔다.
새 가족으로 받아들이자며 아버지가 애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명랑하고 예뻤으며 눈치도 빨랐다.
부엌일도 돕고 청소도 잘했다.
어머니는 진안시장에 데리고 가서 새 옷과 신발도 사주었다.
아버지는 불쌍한 아이라며 항상 말조심하고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차츰 정이 들었고 가족의 일원으로 된 듯했다.
핏줄이 아니어서 일까, 농촌이 고단해서였을까?
모내기하느라 아침부터 바빴다.
집으로 간식거리를 가지러 간 애자가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늦느냐며 의아해하셨다.
옆집 아주머니가 애자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진안으로 가더라고 말했다.
집에 가보니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돈을 가져가 버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무척 허탈해하셨다.
자식들이 결혼하여 두 며느리와 사위를 얻었고,
차츰 손자 손녀가 태어나 가족이 늘었다.
둘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닌다.
그저 귀엽다.
가끔 찾아오고 명절에는 꼭 만나게 된다.
동물원도 함께 가고 원숭이 학교도 데리고 갔었다.
나뭇잎이나 도토리를 주워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소꿉장난도 한다.
금방 놀다가도 다투고 삐지고 울기도 한다.
제 엄마 아빠가 달래도 막무가낼 때도 잦다.
욕심과 고집으로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미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 가족이기에 그렇다.
노래를 제가 먼저 하겠다고 재롱을 떨면 집안이 웃음바다가 된다.
행복한 순간이다.
지난날에는 아픔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다.
철없어 부모님 마음을 애타게도 했고, 자식들 때문에 걱정하기도 했다.
기쁘기도 했고 웃음 짓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세파를 누군들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가족은 어려운 일을 말끔히 씻어주고 다독여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가족만큼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은 세상에 없다. 마냥 포근한 보금자리다.
오늘날 핵가족으로 빠르게 변해가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 부모가 그랬듯이 나도 자식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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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가족의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