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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어린이날에
신팔복
오늘은 제94회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과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1927년 5월
첫째 일요일로 변경했다.
매년 줄기차게 행사를 거듭했으나, 일제강점기 말에 총독부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1939년 중단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5월 5일로 정하여 다시 행사를 해왔다.
1961년에 제정, 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규정했고,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했다가
1975년부터는 공휴일로 제정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전 학년이 운동장에 모여 어린이날
기념식을 하고 하교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친구와 ‘어린이날 노래’를 아주 신나게
부르며 집으로 왔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짧은 동요지만 어린 마음에 푸른 희망으로 와 닿았다.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따스한 햇볕에 성큼 자란 보리밭을 지나 신작로 자갈길을
장난치며 걸어 왔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었다.
지금처럼 부모와 함께하는 어린이날은 아니었다.
너나없이 바쁘고 어려운 생활이라서 그냥 아이들만 좋아하는 날이었다.
전주에도 1978년 6월 10일 동물원이 만들어졌다.
어린이들이 그리던 꿈의 동산이다.
개원한 지 몇 년이 지난 어린이날에 내가 전주동물원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면서 무척 좋아했다.
그림으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본다는 기대는 아이들의
잠을 설치게 했을 것이다.
아내가 도시락을 싸고 아이 셋을 데리고 어머니와 함께
진안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로 갔다.
덕진 연못 앞에서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주시민뿐만 아니라
전북의 어린이와 부모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걸어갈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경단 앞까지 가는데 기력이 소진되고 말았다.
구경이고 뭐고 잘못하면 아이들의 손을 놓치고 잃어버릴 것 같았다.
꼭 잡고 걷는데 이미 아이들도 지쳐있었다.
나오는 사람마다 구경 온 사람들로 초만원이라서 입장할 수도 없다고 했다.
상의(相議)한 끝에 진달래가 핀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늦은
점심밥을 먹었다. 동물은 보지 못하고 몰려다니는 사람들만 봤다.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냥 돌아오게 되어 아이들이 무척 서운하게 생각했다.
다음에 올 것을 약속하며 마음을 달래주었다.
다음엔 온 가족이 광주 사직공원 동물원에 갔다.
전주까지는 내 차로 갔고 전주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
택시를 탔다.
전국에 동물원이 많아져서 그런지 조금은 한산했다.
아이들과 사자, 호랑이, 원숭이, 얼룩말과 비단뱀 등을 보고
조류사도 둘러보았다.
여러 가지 동물들을 보면서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실컷 구경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도 매우 즐거웠다. 아이들에게 풍선과 아이스크림도 사주었다.
잘 먹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활짝 웃으며
좋아하셨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제는 어린이날 손자 손녀가 찾아오면 맛있는 음식과 좋은
장난감을 사줘야겠다.
어린이는 국가의 보배요, 민족의 희망이다.
잘 보호하고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누구에게 맡겨진 책임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지자체마다 어린이날 행사를 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어떤 어린이라도 사회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맘껏 뛰놀고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아이들의 인격을 깡그리 무시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매우 개탄 스럽다.
고사리 같은 영유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매를 맞는가 하면,
뛰어 놀아야 할 자녀들을 자신의 대리 만족의 대상으로 여겨
학원으로만 내모는 부모들이 많다. 또한, 철몰라 저지른
작은 잘못을 타이르기는커녕 구박하고 때리고 심지어 손발을
묶어놓고 목욕탕에 감금시켜 굶기는 몰지각한 부모가 있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제 똥은 구리지 않은 것으로 알며,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 하는 허깨비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아동학대는 절대 안 된다. 어리지만 한 생명체요, 성인처럼
존중받아야 할 당당한 인격체다.
그냥 화풀이나 대리만족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부모와 사회의 따뜻한 보호 아래 나라의
훌륭한 일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그들의 푸른 꿈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른의 권위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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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푸르른 어린이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