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요즘 시대엔
뿔 없는 황소들만 득시글거려요
골목 한구석엔 한줌 햇볕이라도
더 쪼이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는
그 황소들도 왕년엔 잘 나갔지요.
새벽까지 낙지 골목으로 돌고
대문을 쾅쾅 두들기며 귀가하다
고추장 단지를 깨뜨려도 당당했지요
덕분에 황소 뿔도 튼튼하게 자라
아무 곳이나 들이받으며 살았지요
'어차피 인생은 즐기며 사는 것'이라는 철학을
구두 밑창에 깔아 놓고서
속 뚫리게 시원한 원샷을 외쳤지요
그러다 팔자 더러운 모진 놈들을 만나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두 뿔이 송두리째 뽑혔지요.
그 많던 살림살이도 거품으로 녹고
서울역 대합실 구석에 신문지를 깔아
하나같이 정치가 잘되기를 꿈꾸는
실직 황소들이 되었지요
대합실 대형 스크린에선
사슴뿔 보약 선전이 한창이고
며칠째 굶은 뱃속에선
고래 울음소리가 들려 왔지요
아버지! 오늘밤도 귀인을 만나기 위해
뿔 뽑힌 황소 머리통을 만지작거리며
아으, 두 뿔이 불끈 솟아나길 빌었어요
암호 
황소
